지독한 사랑 - 채호기
기차의 육중한 몸체가 순식간에 그대 몸을 덮쳐 누르듯 레일처럼 길게 드러눕는 내 몸 바퀴와 레일이 부딪쳐 피워내는 불꽃같이 내 몸과 그대의 몸이 부딪치며 일으키는 짧은 불꽃 그대 몸의 캄캄한 동굴에 꽂히는 기차처럼 시퍼런 칼끝이 죽음을 관통하는 이 지독한 사랑 내 자궁 속에 그대 주검을 묻듯 그대 자궁 속에 내 주검을 묻네
1993년 한해가 끝나기 며칠전, 우연히 선배와 거리에서 마주쳤다.
내 손을 이끌고 서점으로 가서 시집 한 권을 손에 쥐어 준다.
내 손을 이끌고 서점으로 가서 시집 한 권을 손에 쥐어 준다.
낯설면서 낯익은 시집.
채호기의 '지독한 사랑'이다.
채호기의 '지독한 사랑'이다.
선배는 '지독한 사랑'을 읽고 일주일간 끙끙 앓았다고 한다.
버스안에서 시집을 끄적이다 그 친구가 준 카드를 '지독한 사랑' 속에 꽂아 두었다.
겨울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겨울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책꽂이 한켠에 또 다른 '지독한사랑'이 꽂혀 있다.
낯설고 낯익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낯설고 낯익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독한 사랑은 시작되었다.
이상하게도 채호기 시집은 두 권씩 갖게 됩니다. '지독한 사랑'도 그렇고 '슬픈 게이'도 두 권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한 권씩만 남아 있군요.
그 날은 선배로부터 시집을 받은 날이면서 지금껏 잘 알 수 없는 그 사랑이 시작된 날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7여년 뒤에 그 지독했던 사랑은 끝이 났다. 그 사랑의 여운은 해가 가면서 조금씩 옅어졌지만 6년이 지난 지금에도 남아 맴돈다.
다행히, 지금 남아 있는 시집은 그 선배가 사 준 시집이다. 그 시집을 다른 사람에게 선물할 수가 있을까? 그 사람 또한 지독한 사랑으로 끙끙 앓지는 않을까? 이미 앓았다면 치유가 될 수 있을까? 계속 물음만이 ...
사랑을 꿈꾸는,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 사랑이 특별하기를 원할지도 모른다. 내 사랑은 운명적이고 낭만적이기를, 사랑의 상처는 세상이 무너질 듯한 고통이면서도 달콤하기를, 평범하지 않고 지독한 사랑이기를 ....
나이를 먹었는지, 내 기억을 반추해도 주위 사람을 둘러봐도 사랑의 진화와 그 결과물을 그저 그렇다. 이제는 지독한 사랑보다 그냥 담백한 사랑이었으면 좋겠다. 결과는 비슷하다.
한편 담담한 사랑 속에서, 운명적 사랑에 미련을 갖는 상대가 있다면 옛 추억을 더듬는다면, 또 다른 사람은 함께 있는 충만과 함께 잠재적 공허를 갖고 살아간다. 가엾은 노릇이다.
꿈 속에 살아갈 수 있으나 꿈은 깨고 만다. 시간의 힘이다. 시간은 사랑을 퇴색시키지만 또 다른 것을 윤나게 한다. 그 것을 찾지 못한다면 사랑은 언제나 공허하다. -- JongYeob 2006-10-27 05:50: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