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와인을 따다.
내게는 와인 세 병이 있었다.
첫번째는 2000년 프랑스에서 유학하던 선배가 잠시 귀국했을 때, "여자 친구와 함께 마셔"하며 건넨 프랑스산(!) 와인이었다. 고이 모셔두었다. 그 기회가 생기길 기다리며. 그런데 오래간만에 집에 오신 부모님이 집안 대청소를 하시다가 깨뜨려 버렸다. 아직 그 와인이 어떤 브랜드인지 빈티지가 어떤지 모른다.
두번째는 이듬해, 지친 심신을 달래려 빠리에 있는 그 선배 집에 두 주 동안 머물다 돌아오는 길에 산 와인이다. 프랑스산 와인이라는 걸 제대로 마셔보지도 못 했고 와인이 어울리는 자리 또한 만들어보지 못한 아쉬움에, 프랑스에 왔는데 하는 막연한 관광객의 소비 심리에 편승했다. 와인이라는 걸 모르니 면세점에 있는 점원에게 너무 달지도 않고 마시기에 부담이 없는 그러면서 너무 비싸지도 않고 약간은 고급인 와인을 권해달라고 했다. 대략 면세가로 우리돈으로 계산하면 5만원이 족히 넘었던 기억이 있다.
첫번째 경우처럼 때를 기다렸지만 그로부터 무려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와인을 비교적 오래 보관하려면 적절한 온도에서 산화가 안 되도록 코르크가 젖어 있도록 눕혀 보관해야한다는 걸 알지 못했다. 기회를 잃어 버린 그 와인은 내가 빠리에 출장가서 와인을 사 오기 전까지 그렇게 방치되고 있었다.
첫번째 경우처럼 때를 기다렸지만 그로부터 무려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와인을 비교적 오래 보관하려면 적절한 온도에서 산화가 안 되도록 코르크가 젖어 있도록 눕혀 보관해야한다는 걸 알지 못했다. 기회를 잃어 버린 그 와인은 내가 빠리에 출장가서 와인을 사 오기 전까지 그렇게 방치되고 있었다.
세번째는?
내가 와인이라는 걸 맛보기 전에는 그냥 포도주만 있었다. 잘 익은 포도를 도수 높은 소주에 담가 먹던 소주 알콜내를 풍기는 포도주. 기숙사에서 배식용 철판에다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 잘 어울리는 진로 포도주. 우연히 맛 봤는데 달지도 술냄새가 역하지 않는 포도주라는 게 있구나 하는 놀라움을 안겨준 마주왕(국산 화이트 와인). 이게 내가 알던 포도주의 전부였다. 지난 6-7월 한달간 빠리에 머무르며 저녁 식사 간간히 맛본 와인. 비싸지도 않으면서 와인이라는 게 이런 맛이구나를 조금이나 알게 되었다. 그 맛을 기억코자 부담스럽지 않은 와인을 선물겸사해서 가지고 왔다. 그게 세번째다.
두번째는 세번째로 인해 - 산화되었으리라는 확신한 판단으로 혹시나 해서 열어 봤다. 역시나. 버리기 아까워 음식에나 써 보려고 코르크를 막은 채 냉장고에 모셔두었다. 세번째는 그 용도가 확실했지만 기회가 사라져 버렸다. 추억을 간직할 유품도 아니고 오래 묶혀둔다고 약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전철을 밟을지도 모른다.
와인을 마신다는 것 - 샴페인을 터뜨리는 거와 달리 - 은 익숙치 않은 문화를 가진 우리에게는 영화나 드라마 속에 흔히 비치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후후. 애써 와인을 따다, 이렇게 쓴 이유는 와인을 마시는 클리세가 아니라 순수하게 와인을 개봉했다는 데 집중하고자 함이다. 내게로 와 처음의 용도와 다른 길을 걸었던(?!) 세 병의 와인. 그 세번째는 내 손으로 끝장내 버렸다. 아주 홀가분하게. 와인을 누군가와 함께~ 이런 목적이 사라져 버렸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아마 포기일 수도 있고 쓸 데없는 거에 연연하는 걸 털어버린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와인이라는 걸 맛보기 전에는 그냥 포도주만 있었다. 잘 익은 포도를 도수 높은 소주에 담가 먹던 소주 알콜내를 풍기는 포도주. 기숙사에서 배식용 철판에다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 잘 어울리는 진로 포도주. 우연히 맛 봤는데 달지도 술냄새가 역하지 않는 포도주라는 게 있구나 하는 놀라움을 안겨준 마주왕(국산 화이트 와인). 이게 내가 알던 포도주의 전부였다. 지난 6-7월 한달간 빠리에 머무르며 저녁 식사 간간히 맛본 와인. 비싸지도 않으면서 와인이라는 게 이런 맛이구나를 조금이나 알게 되었다. 그 맛을 기억코자 부담스럽지 않은 와인을 선물겸사해서 가지고 왔다. 그게 세번째다.
두번째는 세번째로 인해 - 산화되었으리라는 확신한 판단으로 혹시나 해서 열어 봤다. 역시나. 버리기 아까워 음식에나 써 보려고 코르크를 막은 채 냉장고에 모셔두었다. 세번째는 그 용도가 확실했지만 기회가 사라져 버렸다. 추억을 간직할 유품도 아니고 오래 묶혀둔다고 약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전철을 밟을지도 모른다.
와인을 마신다는 것 - 샴페인을 터뜨리는 거와 달리 - 은 익숙치 않은 문화를 가진 우리에게는 영화나 드라마 속에 흔히 비치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후후. 애써 와인을 따다, 이렇게 쓴 이유는 와인을 마시는 클리세가 아니라 순수하게 와인을 개봉했다는 데 집중하고자 함이다. 내게로 와 처음의 용도와 다른 길을 걸었던(?!) 세 병의 와인. 그 세번째는 내 손으로 끝장내 버렸다. 아주 홀가분하게. 와인을 누군가와 함께~ 이런 목적이 사라져 버렸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아마 포기일 수도 있고 쓸 데없는 거에 연연하는 걸 털어버린 것일 수도 있다.
아직 와인을 즐길 줄 모른다. 그러나 그 세번째는 내가 잘 몰랐던 맛과 느낌을 알게 해 주었다. 입안에 머물 때는 여러가지 맛을 느끼게 해주지만 넘기고 나면 입안을 시원한 물로 행궈낸 듯 깨끗이 비워준다. 소주와 맥주는 마시고 술 기운을 지우려 안주를 먹는다면 오히려 와인은 그 반대다. 텁터름한 탄닌은 음식 맛을 돋우게 하고 개운해진 입은 다시 음식을 먹었을 때 그 맛을 제대로 느끼게끔 해준다.
돈있는 부르조아처럼 티내고 싶지 않고 - 와인문화권에서 소비되는 와인 90% 이상이 5불/유로 정도 할 뿐이다 - 맛 구분도 못하면서 빈티지 어쩌고 저쩌고 하고 싶지 않다. 내게 남겨졌던 마지막 와인을 따면서, 입안에 께름칙하게 남아 있던 잔맛을 털어낸 것처럼 오랜 시간 남아 있던 막연한 기대심리와 환타지가 약간의 씁쓸함, 신맛과 그리고 은근한 단맛의 여운과 함께 씻겨간 것에 만족한다.
마시다 남은 포도주가 조금 있다. 오늘 일찍 퇴근한 김에 마지막 잔을 따라 마시며 영화를 보다가 일찍 자야겠다.
-- JongYeob 2005-10-24 11:46: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