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고문시간에 배운 서동요. 주입식 교육탓에 배운 지 15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어도 아직 외우고 있다.
난 고문을 좋아했다. 대입시험에 차지하는 비중은 적었지만, 고문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어렵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과목을 쉽고 재미있게 가르쳤다. 특히 옛시, 향가, 고려/백제 가요를 무척 좋아했다. 특히 향가에 나오는 옛글자의 형태소 분석에 무척 재미있어 했다. 신라는 내가 살던 경상도에 있던 나라이고 경상도 말에는 비읍순경음이나 옛말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향가는 대게 설화와 많이 엮여 있다. 특히 서동요는 재미있는 설화를 갖고 있고 내용이 좀 성인취향(?)을 담고 있어서 괜히 관심을 가졌던 향가이다.

善化公主主隱
密只嫁良置古
薯童房乙
夜矣卯乙抱遣去如
http://gugeo.netian.com/oldsong/hyang-ga/po/h1.jpg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얼어두고
서동(맛둥 도련님)을
밤에 몰래 안으러 간다네

용어해설 얼어두고 에서 얼우다는 남녀과 함계 교접하다라는 뜻이 있다.
'어른'은 '얼우다'와 사람을 뜻하는 '이'가 결합된 말로서, 어른 남녀가 함께 함께 잠을 잔 경험이 있는 나이의 사람을 뜻한다.
곧, 경험없는 사람은 어른이 아니라는 이말임. :)

서동은 말그대로 마장수이다. 선화공주를 배필로 얻고 싶어하여 꾀를 낸다. 저자거리에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마를 나눠주며 이 노래를 가르친다. 아이들 노래는 저자거리에서 사람과 사람에게 널리 알려지고 심지어 구중심처에 까지 알려지게 되니 ....

이 노래를 들은 선화공주는 어떠했을까? 기지가 넘친 서동(무왕)이 배필로 삼고자 한 - 단순히 출세를 하고 권력을 얻기 위한 목적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 여자였다면 이 노래를 전해 듣고 수치심과 분노만 느끼지 않았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지 않을까? 첫 느낌이야 부끄러움에 화가 났겠지만 이 노래의 진의와 이 노래를 지은 사람에 대한 상상과 생각 그리고 분석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내가 선화공주였다면 이런 추측을 하지 않았을까.

  • 서동이라는 작자는 나와 어떤 관계를 원하고 있다.
  • 이 작자는 만용에 가까운 용기를 갖고 있다.
  • 이런 노래를 만들어 배포할 정도의 기지/지략과 재능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배포가 아주 두둑하다.
  • 서동은 힘이 쎌 것이다.(!?)

이 노래에 대해서, 노래 가사만 따지고 보면 아주 단순하지만 많은 맥락을 갖고 있다. 그 맥락은 수많은 학자들이 연구했고 잘 알려져 있으니 생략하자.
서동은 힘이 쎌 것이다? 아마도 선화공주는 이 노래를 듣고 얼굴이 붉어졌음이 틀림없다. 수치심 때문이겠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서동에서 서동방에서 서(薯)는 마를 말한다. 서동 또는 서동방은 마를 파는 마장수이다. 뿌리를 먹는 마는 건강 특히 남성에 좋다고 한다. 마를 파는 장수라면 마를 많이 먹을테고 그러니 당연히 남성으로서 힘이 쎌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런 노래를 만든 사람은 용기와 문학실력(?)과 지혜(여기서는 기지나 지략에 가까움)에다가 남성미까지 갖춘 남자라면 신분이 높은 공주일지라도 매력을 느낄 수밖에는 없지 않을까?

뭐 여기까지는 잡다함과 잡스러움과 따른 식으로 생각하기 즐겨하는 그리고 어떤 이야기든 깔때기이론처럼 '성'으로 귀결시키는 종엽이의 서동요에 대한 잡생각이다. 믿거나말거나


백제의 서동(백제 무왕의 어릴 때 이름)이 신라 제26대 진평왕 때 지었다는 한국 최초의 4구체 향가.
저자 : 서동
장르 : 향가
백제의 서동(薯童:백제 武王의 어릴 때 이름)이 신라 제26대 진평왕 때 지었다는 한국 최초의 4구체(四句體) 향가(鄕歌). 민요 형식의 이 노래는 이두(吏讀)로 표기된 원문과 함께 그 설화(說話)가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 무왕조(武王條)에 실려 전한다. 즉, 무왕이 어릴 때 진평왕의 셋째딸인 선화공주(善花公主)가 예쁘다는 소문을 듣고 사모하던 끝에 머리를 깎고 중처럼 차려 신라 서울에 와서 마를 가지고 성 안의 아이들에게 선심을 쓰며 이 노래를 지어 그들에게 부르도록 하였다.

내용은 선화공주가 밤마다 몰래 서동의 방을 찾아간다는 것이었는데, 이 노래가 대궐 안에까지 퍼지자 왕은 마침내 공주를 귀양보내게 되었다. 이에 서동이 길목에 나와 기다리다가 함께 백제로 돌아가서 그는 임금이 되고 선화는 왕비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당시 신라 ·백제 두 나라의 관계로 보아 이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부정하는 설이 있다. 가장 타당한 설은 익산(益山) 미륵사(彌勒寺)의 연기(緣起) 설화로서, 백제의 멸망 후 미륵사 승려들이 절을 구하고자 신라와 미륵사가 관련이 있는 것처럼 지어낸 설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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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03-02-04 16:3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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