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살고 있는 서울에서는 봄날씨를 만끽하기에는 그 시간이 너무 짧다. 봄기운이 잠깐 스쳤다가 꽃샘추위에 다시 겨울로 돌아간 듯하다. 아지랑이는 아주 어렸던 시절 가물가물한 기억에만 있을 뿐 도심속에서는 옛이야기같은 추억에 지나지 않는다. 게으른 고양이처럼, 봄햇살에 나른한 낮잠을 즐기고 싶은 그런 봄은 잠시, 이내 후덥지근한 여름의 기운이 풍긴다.
봄이 오면 '꽃이 핀다. 산과 들에.'
- 개나리
노란 개나리 꽃망울은 이제 봄이 오고 있음을, 머지 않았음을, 봄이 왔음을 알리는 꽃이다. 그런데 이 꽃은 별로 믿을 게 못된다. 가끔 날이 풀린 겨울에도 정신없는 개나리를 꽃망울을 터뜨린다.
- 진달래와 철쭉
잘 구분 못하겠다. 내가 아는 한, 진달래를 맛보면 상큼하고 신맛이 나지만 철쭉은 씁쓸하고 텁텁하다. 내 유일한 구분법이다. 꽃을 먹어 봐야 알다니.
진달래를 따서 먹어본 지 꽤나 되었다.
- 목련
하얀 목련을 볼 때마다 흐벅진 아낙이 떠오른다. 여자에 견준다면, 물오를대로 오른 과부같다. 약간은 질척거리는 느낌을 준다.
피어 있는 목련은 함박눈처럼 한없이 순수하고 탐스럽지만 꽃잎이 떨어질 때면 눈이 녹아 질퍽거리는 것처럼 잎이 바래 지저분한 모습으로 길바닥을 나뒹군다. 그래서인지 새하얀 목련을 볼 때면 도무지 순수나 순결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육정에 넘치는 여인이 떠오른다.
- 벚꽃
목련과 비슷한 시기에 만개한다. 이 두 꽃이 필 때면 사람들은 화사함와 봄을 만끽하러 봄나들이를 간다.
목련과 달리, 꽃잎이 떨어질 때에 시들지 않고 필 때 그 모습 그대로 떨어진다. 그래서인지 일본 국화이기도 한 이 꽃은 그들의 사무라이 정신을 상징한다 하여 좋아들 하나보다.
벚꽃은 하루 나이트에서 만나 유쾌하게 놀다가 헤어진 여자같은 느낌이다. 별기억도 느낌도 없다.
난 벚나무의 벚꽃보다 그 열매인 버찌가 더 좋다. 벚꽃이 지고 파란 버찌가 나고 익어 검붉어 진다. 검보라색 버찌는 약간 달면서 쓴 - 많이 먹을 게 못되지만 흥미로운 맛을 낸다. 버찌가 다 익어 떨어지면 길바닥은 검은색 잉크를 떨어뜨린 듯 지저분해진다.
벚꽃은 질 때 이쁘게 흩날리지만 버찌는 지저분해지는 게 재미나다.
- 춘래불사춘
날씨 탓인지 늘 이맘때가 되면 이 말을 한다. 낮에는 늘 실내에 있으니 봄기운을 느낄 새도 없고 밤에 밖에 나서면 쌀랑하다. 날씨를 떠나 마음은 여전히 춘래불사춘이다.
- 4월은 잔인한 달
엘리엇은 황무지(The Waste Land)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지만, 내 시정이 부족해서인지 황무지를 읽어도 왜 잔인한지 잘 모르겠다.
봄나들이를 가 본 지 참 오래되었다. 카메라도 장만했건만 갈 여지가 없다. 올해 봄도 이렇게 가나보다. -- [J] 2007-04-09 09:29: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