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밤꽃 내음이 날 때면
글쓴날 : 1998.6.9
글쓴날 : 1998.6.9
요 며칠간 아침 저녁으로 회사에 출퇴근 할 때, 그윽한 밤꽃 냄새가 납니다.
회사 뒤편으로 관악산이 둘러싸고 있고 산기슭 곳곳에 밤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밤꽃 냄새를 맡으니 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냄새가 진동하던 충남(북?) 냉정리가 생각납니다. 냉정리는 1992,3년에 경제학과(부)에서 농활을 갔던 마을입니다. 이 마을은 주위가 산으로 둘러 쌓여 있고 산 곳곳에는 밤나무가 있습니다. 농활이 대개 6월말에서 7월초에 있으니 그때쯤이면 산이 하얗게 보일 정도로 밤꽃이 피어납니다. 대다수 남자들은 밤꽃을, 밤꽃 냄새를 싫어합니다. 반면에 유달리 좋아하는 처자들이 있습니다. 밤꽃 냄새만 맡으면 괜시리 얼굴이 붉어지거 나 흥분하는 처녀가 있는데…. 이런 사람을 애인으로 두고 있
으면 한번쯤 의심해 봐야 합니다. 왜냐구요? 직접 확인해 보시길 …
으면 한번쯤 의심해 봐야 합니다. 왜냐구요? 직접 확인해 보시길 …
밤꽃과 냉정리를 생각하니 고생 많았던 농활이 기억납니다. 92년, 제가 2학년 때, 농활을 10여일 앞두고 발을 심하게 다쳤습니다. 밤늦게 어두운 계단을 내려가다 다리를 헛디뎌 왼쪽 발등을 접질렀습니다. 발등이 퉁퉁 부었고 도저히 걸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당시에 제가 과 농활대 교육부장을 맡아 농활 자료집을 만들고 후배들 의식화(?)를 수행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있었습니다. 다리를 다쳐 걷기도 힘들었지만 어떻게 합니까. 제가 농활 가자고 꼬드긴 후배들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는데. 다리가 아파 농사 일은 할 수 없지만, 가서 밥하고 설거지라도 해야 겠다는 굳은 의지로
10여 일간에 대장정에 참가했습니다. 주인 내외가 자살했다는 설이 있는 폐가에 숙소를 잡았습니다. 오랫동안 아무도 살지 않던 집은 쑥이 무성하게 자라 말 그대로 쑥대 밭이었습니다. 낫으로 쑥을 베어 내고 장판을 구해 흙바닥이 드러난 방을 단장해서 수십 명의 경우가 칼잠이라도 잘 수 있도록 집을 꾸몄죠. 92년 농활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92년 농활은 지독한 밤꽃 냄새와 하루종일 밥하고 설거지한 기억 밖에 없습니다.
10여 일간에 대장정에 참가했습니다. 주인 내외가 자살했다는 설이 있는 폐가에 숙소를 잡았습니다. 오랫동안 아무도 살지 않던 집은 쑥이 무성하게 자라 말 그대로 쑥대 밭이었습니다. 낫으로 쑥을 베어 내고 장판을 구해 흙바닥이 드러난 방을 단장해서 수십 명의 경우가 칼잠이라도 잘 수 있도록 집을 꾸몄죠. 92년 농활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92년 농활은 지독한 밤꽃 냄새와 하루종일 밥하고 설거지한 기억 밖에 없습니다.93년에도 같은 마을에 농활을 갔습니다. 여전히 그 마을은 밤꽃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더군요. 2학년 농활대장이 노땅들 위한답시고 선배들을 논일 대신 밤산일을 보내더군요. 논일은 일 자체가 단순하고 허리가 좀 아프기 때문에 논일은 피하려는 경향이 조금 있었습니다. 그런데 밤나무 산에서 일은 농활
10종 경기, 농활 유격훈련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10종 경기, 농활 유격훈련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런지 밤 농사에 대해 조금만 설명하죠. 밤농사의 가장 핵심은 2~6만평 정도 되는 밤밭 또는 밤산을 한 사람이 관리한다는 데 있습니다. 봄과 여름에 가지치기를 합니다. 몇 만평이 되는 넓은 산에서 수 없이 많은 밤나무 전부를 한 사람이 가지치기 합니다. 나뭇가지가 빽빽이 있으면 밤 생육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밤나무 간격과 가지 밀집도를 고려하여 가지를 쳐줍니다. 한 사람이 가지치기를 하는데 하루 꼬박 일을 해서 보름에서 한달 이상이 걸립니다. 다행스럽게 자동톱을 사용합니다. 가지치기가 끝나면 잘라진 가지를 한 곳에 모아 불에 태웁니다. 그 다음 여름이 끝나가고 산이 풀로 무성해 졌을 때, 더 이상 풀이 자라지 않을 때 산에 있는 모든 풀을 잘라냅니다. 밤수확은 장대로 가지를 쳐서 밤을 떨어뜨리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밤을 줍기 쉽도록 산에 뒤덮혀 있는 풀을 모조리 베어 냅니다. 그것도 몇 만평 되는 산을 혼자서! 밤수확은 혼자 하지 않습니다. 품앗이를 하거나 일꾼을 고용해서 합니다. 어느 농산물이
나 마찬가지겠지만 우리가 쉽게 까먹은 밤도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나 마찬가지겠지만 우리가 쉽게 까먹은 밤도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우리가 맡은 일은 흩어진 가지를 한 곳에 모으는 일이었습니다. 가지 모으는 일이 단순하게 들리겠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죠. 잔가지도 있지만 대부분은 혼자서 들기에 아니 혼자서 끌기에도 힘들 정도로 무겁습니다. 무거운 나무 둥치를 끌고 장장 여덟 시간 동안 산비탈을 오르락 내리락 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나와 같이 같던 노땅, 장군의 아들 박두환 형(같은 91인데 삼수를 했고 사회대 학생회장 출신)과 나 그리고 몇 명의 후배의 유일한 희망은 점심 때 숙소로 돌아가 밥을 먹은 것이었습니다. 밥먹으로 가서 다른 사람으로 교체해 달라는 속셈이 있었던 거죠. 숙소에서 밤산까지는 거리가 좀 멀었죠. 그런 희망은 우리를 고용했던 할아버지의 "택도 없는 소리!" 한마디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할머니가 날라다 주신 새참으로 식사를 했습니다. 밥 맛은 꿀맛이더군요. 식사후 고난의 밤산 오르기는 반복되었습니다. 두세 시를 넘어가니 입에서 단내가 팍팍 나더군요. 최후의 수단으로 노땅 두 사람은 소주 - 충청도 소주는
약간 달짝지근한 선양 소주입니다 - 를 들이키고 술기운으로 일했습니다.
약간 달짝지근한 선양 소주입니다 - 를 들이키고 술기운으로 일했습니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그 이후로는 어릴 때 좋아했던 밤을 잘 안 먹습니다. 자취 생활 탓도 있겠죠.
대학 5년의 생활 중에서 4년간은 꼬박 농활에 갔습니다. 5학년때는 자기 생활에 바쁘다는 핑계로 안 갔죠. 농활의 참맛은 3학년때 비로소 느꼈습니다. 멋 몰랐던 1학년때는 농민들과 뭔가 의식적인 대화를 나눠야 한다는 목적 의식과 육체적인 고통에 농활이 인내해야 하는 과정으로 느껴졌습니다. 물론 10일 농활 사수라는 뿌듯함이 있었죠. 2학년 때는 밥하기와 설거지만 기억납니다. 3학년때는 육체적인 어려움을 대수롭지 않고, 2학년이 후배들 다 챙기나 크게 신경쓸 일 없고, 3년간 별의 별짓을 다 해 봤으니 사람 대하는 것도 어려움이 없더군요. 3학년쯤 되니까 저 보다 20살이 더 많은 아저씨 보고, "형님, 술한잔 주십쇼"라는 말이 절로 나오더군요. 자연스럽게 너스레를 떨게 됩디다.
밤꽃 냄새 때문에 얘기가 길어졌습니다. 다들 기말 고사 준비하느라 바쁠겁니다. 긴 글 읽느라 짜증도 나겠죠. 시험이 끝나면 다들 뭘 할 건가요? 아르바이트? 비싼 하숙비 때문에 낙향? 어학연수? 못다한 공부? …. 각자가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대학 시절에서 농활이 많은 기억에 남더군요.
사람마다 농활에 대해 제각각의 생각이겠지만 무조건 가 볼만하다, 아니 가 봐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이런 사람들에게 농활을 권유합니다.
특히 이런 사람들에게 농활을 권유합니다.
농촌 현실을 체험하겠다. 농업경제학 실습을 해 보겠다. IMF가 농업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조사하겠다. 10여일간 공짜밥 먹어 보겠다. 살 빼기 위해 다이어트나 헬스 대신에 노동을 하겠다.
자취생활로 축난 몸, 실컫 먹고 노동해서 몸 튼튼 마음튼튼!
/* 위 두 가지는 모순되는 듯 하지만 실제 그렇습니다. 뚱뚱한 사람은 살빠지고 약한 사람은 더 건강해 진답니다. */
선탠 한번 해 봐야지.
군대 가기 전에 봉사나 좀 해보자.
믿음직한 남자를 구해 봤으면 …
밤꽃 냄새 한번 맡아 보고 싶다.
….
이도 저도 아무런 생각이 없다.
자취생활로 축난 몸, 실컫 먹고 노동해서 몸 튼튼 마음튼튼!
/* 위 두 가지는 모순되는 듯 하지만 실제 그렇습니다. 뚱뚱한 사람은 살빠지고 약한 사람은 더 건강해 진답니다. */
선탠 한번 해 봐야지.
군대 가기 전에 봉사나 좀 해보자.
믿음직한 남자를 구해 봤으면 …
밤꽃 냄새 한번 맡아 보고 싶다.
….
이도 저도 아무런 생각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