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별 90 윤자영 선배와 또한 한별 91 문정빈 두 사람이 결혼을 합니다.
때 : 1999.6.26(흙) 17:00
곳 : 소피텔 앰배서더 호텔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 역)
두 사람을 잘 모르는 후배들을 위해 제 경험과 추억을 토대로 두 사람을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이하 존칭 생략.
자영이 누나, 경제학과 90학번 세명의 여학생 가운데 한명, 참고로 당시 경제학과 정원 140여명.
91년도 언제였던가 MT를 갔을 때 조용히 흐르는 고즈넉히 개울을 보며 상념에 잠긴 모습이 가장 선명하게 기억된다. 그 모습을 본 89 선배는 '너 또 감상에 젖어드는구나'라고 말을 했다. 어쩌면 그 모습이 내가 처음으로 다가온 자영이 누나의 느낌이다. 그 느낌과 인상 그리고 그 상황은 너무나 선명해 지난 대학생활을 되새겨봤을 때 떠오르는 한 장면이다. 가끔 누나 또 감상에 빠져들었구나 라고 하면, '넌 아직 날 잘 몰라' 라는 표정으로 타박을 놓곤 했다. 그러나 한해두해 알아 오면서, 내가 어렸을 적 마음으로 자영누나=감상 이라는 등식은 서서히 바뀌어 갔다. 때로는 투쟁하는 여성전사로, 때로는 품넓은 누나처럼, 마음한켠에는 한걸음 다가가고 싶은 여인으로 느껴졌다.
나뿐만이 아니다. 내가 아는 91학번 가운데 자영 누나를 '나의 베이트리체'라고 마음 속으로 외쳐대거나 술자리에서 솔직하게 고백하는 녀석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학번을 망라하고 .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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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이 누나는 학부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여성대학원에 들어갔다. 이 시대에 '여자'라는 두 글자가 오래전부터 자신의 화두였는지는 모르겠다. 남자들이 우글거리는, 남성중심의 사고가 팽배해 있는 경제학과라는 환경이, 자신의 방향에 어느정도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자영 누나는 공부를 하면서 여성운동 측면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 투쟁라고 볼 수 있지만 담론적 실천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할 것 같다. 대학원 공부뿐만 아니라 진보적인 잡지에 투고를 하고 보수논객과 지상논쟁을 벌이기고 했다. 여성학이나 여성문제 관련 몇몇 단행본에 윤자영이라는 세 글자가이 공동저자 이름에 올라와 있었다. 페미니즘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봐야할 책을 공동 번역하기도 했다. 지금도 꾸준히 팔리고 있는 이갈리아의딸들의 공동 번역자이기도 하다.
지금은 무얼하고 있을까? 당장은 결혼식을 준비해야겠지. 준비해야할 게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낭군이 영국에 있어서 혼자 고생이 이만저만 아닐텐데. 결혼후 잠시 영국에 머물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고 한다. 미국의 유명한 대학(이름은 들었지만 잊어버렸음)에서 어드미션을 받았다. 남들처럼 허니문을 떠나 달홈한 신혼생활을 하면 좋을텐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깝다.
문정빈, 경제학과 91, 한별 91학번의 실질적인 짱 (명목짱은 신종엽). 나는 그를 마정빈이라고 부른다. 그 때문에 어떤 녀석들이 이 녀석의 성이 마씨로 알고 있다. 여기서 마는 경상도 사람들이 마~아~ 하는 감탄사이다.
나는 이 친구의 진정한 가치를 2학년이 되어서 알게 되었다. 학회할동을 하면서 가장 고맙게 느끼는 친구이다. 그러나 고맙다는 얘기는커녕 진득하게 술한번 제대로 못 마셔본 것 같다.
나는 사람들을 비교하고 비교하고 부러워하는 걸 꺼려한다. 그렇게 한다면 나는 미쳐버릴 것이기 때문에. 세속적이지 않은 의미에서 부러워하는 유일한 친구이자 대상이다. 짜식,
나 보다 잘 생겼지 -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지금까지 인정되고 있는 미의 기준(균형미)에서 봐서 정말 잘 생겼음. 공부잘하지 - 학점이 나보다 좋음. 운동 잘하지 - 나는 운동이라고는 할 줄 아는게 없음. 노래 잘하지 - 91년 당시 영어건 우리말이건 랩을 자유자재로 구사함. 악기도 잘 다뤄 - 이 녀석은 대 놓고 티를 안 내는데, 한번 기타를 치는 걸 보고 할 말을 잃음. 연애도 잘 했지 - 거쳐간 여자가 한둘이 ... 하하 이건 농담임. 정빈이는 언제나 사람을 진지하게 대했기 때문에 매력적인 남자라 해서 이런 유추해석은 곤란함. 옷걸이도 좋아 - 내게 맞은 옷은 거의 없음.
나는 사람들을 비교하고 비교하고 부러워하는 걸 꺼려한다. 그렇게 한다면 나는 미쳐버릴 것이기 때문에. 세속적이지 않은 의미에서 부러워하는 유일한 친구이자 대상이다. 짜식,
나 보다 잘 생겼지 -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지금까지 인정되고 있는 미의 기준(균형미)에서 봐서 정말 잘 생겼음. 공부잘하지 - 학점이 나보다 좋음. 운동 잘하지 - 나는 운동이라고는 할 줄 아는게 없음. 노래 잘하지 - 91년 당시 영어건 우리말이건 랩을 자유자재로 구사함. 악기도 잘 다뤄 - 이 녀석은 대 놓고 티를 안 내는데, 한번 기타를 치는 걸 보고 할 말을 잃음. 연애도 잘 했지 - 거쳐간 여자가 한둘이 ... 하하 이건 농담임. 정빈이는 언제나 사람을 진지하게 대했기 때문에 매력적인 남자라 해서 이런 유추해석은 곤란함. 옷걸이도 좋아 - 내게 맞은 옷은 거의 없음.
91,92년 같은 학회에 있었지만 이 녀석과 나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이 녀석은 누구보다도 학회 활동을 열심히 했고 91,92년 가투에서 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이녀석은 나 보다는 전공공부를 많이 하고 있었다. 난 활동을 한답시고 날마다 술 처먹고 수업 안 들어가고, 내 딴에는 사명은 있었지만 룸펜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서서히 지쳐갔고 가끔씩 이 친구처럼 행동하고 생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했다. 물론 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드러난 겉모습만 보았기 때문에.
어렸을 때 이런 느낌이 정빈이를 좋아하면서 쉽게 다가가지 못한 출발점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외적인 모습 때문에, 그의 진실에 다가가지 못하고 그가 느끼는 외로움과 내적 고통을 이해하고 못하고 또한 내 고민을 그와 나누지 못했다고 판단이 든다. 다시 말하자면 이 녀석과 술쳐먹고 이새끼 저새끼 하는 기회가 없었다는 뜻.
92년 중간고사 때가 기억난다. 마의 미시경제학 중간 고사를 하루 앞두고 있었다. 노트를 복사해서 암호같은 내용에 헤매고 있을 때였다. 퀴퀴한 도서관에 쳐 박혀 있는 게 미친 짓같은 지랄같이 좋은 초여름 날씨였다. 수업이라곤 들어간 적이 거의 없었던지라 수백 페이지가 되는 전공책은 딴나라 말로만 느껴지는 막막한 순간. 누가 동을 떴는지 모른다. 마침 정빈이는 어머니가 물려주신 고물 스텔라가 있었다. 정빈이, 지금 사법연수원에서 뺑이 치고 있는 깽영호라는 녀석 세명이 은행에서 찾을 수 있는 돈만큼 찾아 과천서울대공원으로 ...
칼을 들고 하늘을 찌르면 파란 옷감이 푹 찢어들 듯한 화창한 날씨.
평일 오후 인적인 드문 놀이공원.
평일 오후 인적인 드문 놀이공원.
세 사람은 자유이용권을 끊어 이른 오후부터 레이져 빔쑈와 댄서들이 폐장을 알리는 퍼레이드를 벌일 때까지 미친 듯이 놀았다. 그리고 다음날은 ....
그 녀석은 공군장교로 군복무를 하고 나는 회사에 들어갔다. 1학년 경제원론 스터디 때 확인한 그 녀석의 수학적 재능과 경제학적인 사고체계에 나는 기가 질린적 있다. 당연히 제대후 대학원에 들어갔고 소식이 끝긴가 싶더니 영국의 LSE라는 대학원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전에 간만에 만난 자리에서, 자신은 윤 모양의 따님 모 자영 양과 사랑을 한다는 고백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한 사람은 푸근한 누나처럼, 힘들고 치쳤을 때 동지처럼, 가끔은 연인처럼. 또 다른 한 사람은 내 콤플렉스의 투영처럼, 보이지 않게 날 도와준 고마운 친구로, 한걸음 더 다가가지 못한 아쉬운 벗으로.
올해 힘든 고비를 겪을 때 한사람 한사람이 소중함으로 다가온다. 두 사람 행복하기를 ...
1999 6/22 화 22:00
추억 한자락을 잠시 떠올리며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