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굴이 작고 체형이 마를 터라 외형에서 나잇살 먹어가는 게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따금 거울 보면, 얼굴에 윤기가 줄어들고 주름살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음을 확인할 때, 나도 나이들어가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 사회적으로는 친구들이 살이 찌고 배가 나오고 그들의 아이들이 커 가고 있음을 볼 때, 나 또한 그들과 다를 바가 없음을 문득 깨닫게 된다.
이제 더이상 내가 젊다는 착각을 하지 않는다. 동안이라는 택도 없는 자만심도 버렸다. 그렇게 된 계기가 있다. 서른 이라는 고비를 넘기기 전에, 선배들과 3차까지 술을 마신 적이 있다. 사장인 선배는 나와 9년, 부사장인 형은 5년이라는 연배 차이가 있었다.
두 선배다 워낙 술을 잘마시고 많이 마신다. 나는 적당히 취기만 오를 정도로 마셨는데, 가볍게 해장하러 가려는 상황에서 갑자기 진로를 바꿔서 술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양주를 시켜 놨지만 두 사람다 거의 인사불성이었다. 각 파트너들은 베개 역할을 또 다른 사람은 말빨 좋은 선배에 취기 어린 술주정을 받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당시 그 선배들과 술마실 때면 늘 사고처리전담반 노릇을 했다.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안주에 잔뜩 남은 술에. 난 두 선배 변화 추이(?!)를 관찰하면서 난 옆사람과 술주작을 하면서 자릿값 아끼기 모드에 돌입했다.
워낙 두 선배들과 내가 연배 차이가 나는 터라, 아가씨가 이런 말을 한다. "오빠 참 어려 보인다." 사회 생활하면서 어려 보이는 거로 손해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 말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그래도 30을 목전에 두고 그런 말을 들으니 기쁘지 않을쏘냐. 도대체 얼마로 보이는지 궁금해졌다. "몇 살로 보이는데?" "응. 스물아홉!"
그 뒤로 나이에 대해 거론하는 말을 어디서나 잘 안 꺼낸다. 특히, 사람 많이 겪은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아무리 내가 얼굴이 작고 어려 보인다고 할지언정 사람들한테 닳고 닳은 사람들에게는 그런 게 안 통한다. 딱 보면 알아버린다.
젊은 게 좋다지만, 언제나 젊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전 회사에 젊은 친구들이 많았는데, 회식을 하거나 뭔 일을 하더라도 정서에 차이가 있음을 느꼈다. 일과 개인 생활에 대한 태도가 나와 많이 다르다. 회식에서 대화 주제는 생활적인 거나 업무에 대한 것도 다르다. 애써 공통적인 이야기거리를 찾아야 한다. 노래방에서도 부르는 노래 유형이 다르다.
이제는 나와 비슷한 나이의 사람과 대화를 하고 일하는 게 편하다. 남자건 호감을 갖는 이성도 마찬가지다. 동년배나 동시대 사람간에는 관심사나 대화 주제가 비슷하다. 다르다 하더라도 갖고 있는 정보의 수준과 양이 비슷하기 때문에 대화가 가능하다. 차이가 많으면 불편하다. 사람 관계에서는 편해야 한다.
농으로 어린 여자가 좋지 않냐고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도 않다. 어렸을 때는, 이성에 대해서도 푸근한 선배같은 여자들이 좋았다. 지금은 선배들은 학부모 소리 들을 나이가 되어서 별 매력이 없다. 젊은 친구들은 매력적이나 얘기거리가 별로 없다. 이쁠지언정 이쁘다는 느낌이 없다. 이제는 나와 비슷하게 나이먹은 여자가 더 낫다. 편하다. 싱싱한 피부가 아닐지언정 그런 여자들이 더 매력적이다. 매력은 다양한 측면이니까.
나이를 먹어가면 사람들간에 적당한 수준을 가늠하면서 관계를 유지해간다. 자연스런 배려도 있고 그러하기에 관계 자체가 편하다. 남자건 여자건 서로 편해야 한다. 자극적인 관계보다 푸근한 관계가 좋아진다. 그렇게 되고 있음이 나이를 먹고 있다는 뜻이리라.
-- [J] 2006-11-15 10:40: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