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9일

후배들과 술을 마시다 12시쯤에 전화를 걸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는 걸 의식하고 벨 소리가 너댓번 울리고 나서 끊어 버렸다.

다음날 오전에 전화가 왔다.

"요즘 짐을 정리하고 있다. 혹시 부모님들이 보면 충격을 받을지 모를 그런 것들만 따로 모아 두고 있다. 이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너무 자주 정신을 잃는다. 이러다가 운전하고 가다가 깜빡 정신을 잃게 된다면 죄없는 사람마저 죽일지 모르겠다."

그는 죽음에 대한 예감 단계를 넘어서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죽음을 맞이하는 게 아니라 끌어들이려고 하고 있다.

11월 4일

전철 안, 사람이 가득찬 상태에서 전화를 걸어 말을 하기가 곤란했다. 전에 만나고 헤어지면서 집에 도착할 즈음에 '집에 잘 도착했냐'는 문자 메시지를 받은 적이 있다. '오호, 그 연세에 문자도 보내시군요.'라는 말에 '전화 걸기 애매할 때, 문자가 편하더라'라는 말을 들었다. 말로 하기 애매할 때 나도 그처럼 문자를 보냈다.

11/4 오후 09:??
'죽는 자는 아무렇지 않지만 살아 남은 이들에게는 고통입니다.'

11/4 오후 09:51
'저런 난 이미 죽어버린 사람이라.. 괴로움은 껍데기에도 계속되더라만 - 자살보험 생각 중이다.'

11/4 오후 09:52
'2년 기다려야하니까.'

11/4 오후 09:53
'하긴 살 두른 이의 인생이란 오딧세우스나 갑돌이나 모두 파란만장하고 고된 건 마찬가지라카더라.'

11/4 오후 10:1?
'그래도 오딧세우스에게는 기다리는 페렐로페와 그를 알아보는 누렁이가 있잖아요.'


11/4 오후 10:16
'다 허망한 거다. 누렁이 빼고 사랑은 다 허망한 거야.'

11/4 오후 10:17
'가족에게 그 정도 예의는 있어야지 -.-: 너 요즘 외롭니'

11/4 오후 10:17
'외롭다기보다 그리울 뿐입니다.'

11/4 오후 10:18
'그래 그 빌어먹을 그리움이 늘 문제야. 외로운 건 즐길 수도 있는데 그리운 건 사람을 상하게 하지.'

난 밀폐된 지하철을 견디지 못하고, 숨가삐 뛰는 심장과 헉헉거리는 허파를 달래려 전철역을 나왔다.
마지막 문자메시지를 보고 내가 소중하게 여기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갈망하며, 그 가운데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 보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하죠? 그리우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글쎄 ..."

힘없는 대답에, 난 어찌할 수 없다. 수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거리에서 난 눈물을 흘리며 걷는다. 그가 없다면, 보고 싶고 그리워도 다시 볼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언젠가 후배에 선택에 대해 존중해주겠다고 하면서 그래도사는게낫다라고 토를 달았다. 그러나 지금 그에게는 이 말을 꺼낼 수가 없다. 감히 사는게 낫다고 말할 수가 없다. 인연의 한 끝자락이 닿았기에, 조금이나마 그 삶을 맛봤기에, 감히 그렇게 할 수 없다.

그의 흔적과 기억이 많이 남아 있다. 지울 수 있다. 1년에 한번 겨우 볼까말까 했기에 보고 싶으면 참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리우면 어떡해야 하나 ...

-- JongYeob 2004-01-03 14:2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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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04-01-03 14:2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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